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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학년 : 재료기법1

    금주영

    <시계>, 16초, 영상, 2020

     

    드로잉을 디지털화했다. 신체의 부분에 핀을 주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시계 속 부품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

     

    김아로

    <재료기법1>, 1920x1080(px), 영상, 2020

     

    재료기법1 수업을 들으며 공부한 흔적, 개인 작업, 드로잉을 모아서 웹사이트로 감상하는 듯한 영상을 만들었다.

    장서현

    <Walking>, 1분 26초, 영상,2020

     

    움직임 뒤에 필연적으로 남는 잔상이라는 현상에 우리가 걸어온 길의 은유적 표현을 담아 영상을 제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걷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정희윤

    <드로잉 애니메이션>, 23초, 애니메이팅, 2020

     

     

    황수빈

    <꿈>, 1분 10초, 영상/블렌더,애프터이펙트, 2020

     

    꿈에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베개와 이불이라고 생각한다. 깊게 잠이 들어야 꿈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모델링 된 베개와 이불은 꿈을 상징한다. 여기에 매핑된 영상들은 매주 작업해오던 잠을 자고 있는 여자들을 그린 드로잉들을 모아 울렁이게끔 만들어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최현석

    <崔玹碩>, 3분 1초, 영상 , 2020

     

    내 자신의 에고를 생각해봤다. 그것은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무언가일수도 있고, 상징적인 무언가로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수라라는 요괴가 생각났다.

    불투명한 팔들은 불교/힌두교에서 언급되는 아수라를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번뇌의 상징인 아수라는 내가 살아가면서 과거의 것과는 다른 길로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들 전부를 얘기한다. 꿈, 신념, 상황 등 모든 부분에서의 현재의 나는 과거와 미래의 나와 다르다. 하지만 저 많은 번뇌들 또한 한때 나의 꿈이었으며 선택한 길이었고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미래에는 다른 결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3학년 : 표현기법1

    금주영

    <중천>, 2분 47초, 영상, 2020

     

    15년 전 살던 동네로 얼마 전 다시 이사를 왔다. 집 앞에는 작은 개천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썰매를 끌고 나와 언 개천 위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개천은 많이 변해있었다. 고향 강을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인공물만이 남아있었다. 돌다리를 만들고, 인공폭포와 그늘막을 만들어 쉼터를 제공하는 듯했지만, 예전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이 아닌 하류인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와 상류에 공급하는 우스운 모양새이다. 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이 떠다니며 썩은 냄새가 나 예전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물은 순환한다. 물은 액체, 고체, 기체의 상태로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 바다의 물이 증발하면 대기로 올라가 응축된다. 구름은 이리저리 움직이다 비나 눈의 형태로 다시 내려온다. 그렇게 내린 물은 어떻게 되는가. 산맥을 따라 개울로 흐르거나 지하수로 흡수된다. 생명을 살리고 하천에 모여 회포를 푼 후 다시 기화한다. 상상할 수도 없을 오랜 세월을 물은 움직여 온 것이다. 작업에 사용한 사진은 집 앞 개천에서 찍은 사진이다. 개발에 감사하는 현수막의 반면에는 물이 닿지 않아 흔적만 남고 말라버린 개울이 있다. 물의 흔적, 인공 폭포, 물 위의 부유물 세 이미지를 영상으로 편집하였다. 형태와 색이 이동이 물질의 이동으로 착각하도록 의도했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물이 지나간 오랜 세월에 비해선 지극히 찰나일 뿐이다. 사진 속 강렬한 색만이 이동하는 모습이 물의 역사를 보여준다.

     

    김아로

    <모순>, 2000x1000, 영상, 2020

     

    우리는 정보화 시대, 초연결 시대 속에서 다양한 정보와 소통이 열린 세상에 살며 역설적으로 더욱 갇힌 삶을 살고 있다. 다양한 정보가 존재할수록 정보의 편식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커지고 스스로 갇힌 삶을 살아간다. ‘우리 사회과 소위 ‘정보화 시대’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지식의 시대로 불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말이 이러한 현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반영하여 연결되어 있을수록 프레임 속에 갇혀 버려 진실을 보지 못하는 개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에서 서로 연결되고 있는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수많은 개인과 정보가 연결되고 있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러한 형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연결이 되면서 오히려 갇혀버리는 모순을 보여준다. 또한 유리를 사용했는데 유리에 반사된 물체를 통해 공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네모 형태의 공간은 적은 양의 빛으로 인해 공간이 다소 답답하고 좁아 보인다. 작품은 VR 기기를 이용해 볼 수 있으며 관람객이 마치 그 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도록 함으로써 작품의 의도에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여진

    <상냥하지 않은 이야기>, 셀 애니메이션, 2020

     

    소년이 사는 세계의 색채는 보랏빛과 어두운 분홍빛이 감돈다. 소년은 이 세계가 뭔가 이상하고 모순되어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대응하기도 귀찮고 흘러가는대로 산다. 마을 사람들은 때거지로 사슴사냥에 미쳐있고 국가가 이를 나서서 주도한다. (여기서 묘사되는 사슴은 보통 사슴이 아니라 숲의 신으로 묘사되는 그런 사슴의 이미지다 뿔이 엄청 길고 외관상 좀 더 기린이나 용을 닮았다) 이러한 모티브는 고대 때부터 사슴에서 생각 되어지던 이미지에서 얻어왔다. 밑은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고대부터 사슴은 미려한 외형과 온순한 성격을 가진 탓에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사슴의 상징성은 켈트족, 불교, 중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스키타이 전설, 그리스 신화, 기독교 신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등장하는데, 동서양의 대략적인 상징성은 이와 같다. 애니메이션 속 마을에서는 모두들 사슴사냥에 몰두하게 되고 사냥을 하지 않으면 에게 멸시받게 되는 분위기 속에서 소년도 어찌저찌 하다 동참하게 된다. 그는 숲에 가게되고 밑에 삽입된 그림에서 볼 수 있지만 소년은 사슴과 둘만 대면하게 되는데 사냥에 대해서 망설이고 주춤한다. 어떻게 보면 놓아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사슴은 달아나버리고 달아나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아름답게 5초 정도 그려낼 것이다. 달아나버리는 모습은 조금 더 날 따라와. 라는 느낌이다. 사슴을 쫓아간 곳은 굉장히 눈부신 곳으로 색체를 바뀐다. 소년은 빛에 눈이 부셔 깜빡이는데 무엇인가를 보고 놀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감상자의 몫.

     

    정세빈

    <프레임, 프레임>, 799*799(pixel),20초, mp4 영상, 2020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온라인으로 소통한 한 학기. 프레임 너머로 얼굴을 마주하는 지금, 우리는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소통의 답답함과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데서 오는 무력감을 녹아내리는 캐릭터의 형태를 통해 공감하고자 한다.

     

    정희윤

    <도망>, 26초, 애니메이팅, 2020

    황수빈

    <양초>, 20초, 영상, 2020

     

    양초를 주제 삼아 작품을 하려 했을 때 많이 헤매었다. 그때 자신의 주제에 맞는 논문을 찾는 과제가 있었다. 논문에서 수직적이라는 단어와 하락, 침체 등이라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양초를 바라보았다. 수직적으로 떨어지는 촛농이 마치 눈물처럼 보였고 이를 통해 슬픔, 고독 등을 연상하게 되었다. 3d펜을 이용해 슬픈 포즈를 한 사람을 만들고 그 위에 글루건을 이용해 촛농처럼 표현했다. 그리고 애프터이펙트를 이용해 여러 영상을 쌓는 레이어 작업을 통해 영상으로 만들었다.

     

     

    3학년 : 조형연구3

    김진주

    <빨래널기(Wash out the Blue)>, 4200x1150x80 (cm), 전지에 채색/빨랫줄에 설치,2020

     

    이 작업의 주된 것은 종이,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펼치고 줄에 너는 행위입니다. 종이는 화면이자, 저의 안과 밖을 대변하는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작업으로 풀어보고자 한 화면의 역할은 어떤 형상을 비추는 것인데, 이때의 형상이란 외부 뿐 아니라 내부의 모습까지도 포함합니다.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이 은은히 비쳐 보일 정도의 두께를 가진 종이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맥락 아래 양면의 의미를 사용하고자 함입니다. 마음이라는 창, 그리고 세상과 맞닿아있는 육체라는 창을 봅니다. 그 둘은 분명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딘가에 너무 열중하다가 그만 그 두 개의 창이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종이가 가진 양면은 서로 다른 공간을 가짐과 동시에 하나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종이의 한 면에 칠해진 물감은 그 종이의 반대쪽 면에서도 비치게 됩니다. 마음 한 편에 어떤 것이 피어오르면 그것은 꼭 그 편에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또 종이에 칠해진 얼룩은 강한 빛이 종이를 비추게 될 수록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어두음에 있을 때보다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빛이 있을 때에 빨래가 마를 수 있듯이, 털어내고자 한 것들을 더 이상 감추지 않고 낱낱이 빛 아래에 내어두고자 함입니다. 구겨진 종이와 그렇지 않은 종이가 무작위로 병렬배치한 것은 아직 손대지 못한 마음들,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이한지

    <이상향-상상속의 이상적이며 완전한 곳>, 116.8*91.0, 캔버스에 아크릴/영상, 2020

     

    나는 작품 제작을 통해 ‘회화에서의 표현이 가지는 한계점을 극복’하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회화를 통해 관찰자는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아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지만 모든 표현의 요소가 한 평면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한계를 가진다. 나는 나의 작품에서 회화 작품을 공간감이 느껴지는 영상과 함께 결합하여 하나의 수단으로서 표현하여 극복하고자 한다. 회화가 가지는 ’평면적인 세계‘가 영상에서의 ’입체적인 세계‘ 속에 놓이면서 캔버스는 더 이상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으로만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영상과 회화 작품에서의 각각의 세계 모두 본인이 상상해 낸 이상적이며 완전한 곳인 ’이상향‘으로서 존재한다. 나의 작품에서 ’이상향‘속의 ’이상향‘이 ’공간‘속의 ’평면‘으로 표현되고 ’평면‘에서 볼 수 있는 세계는 또 다른 ’이상향‘을 나타내는 공간을 드러낸다. 기존의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관람객은 캔버스라는 대상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위에 그려진 작품만 감상하면 되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캔버스가 다른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캔버스’라는 존재가 애초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로 인해 관객은 캔버스 위에 표현된 세상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고 캔버스의 모습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감상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상에 편하게 몰입할 수 없다. 결국 나의 작품은 이를 통해 자신이 하나의 창문 즉, 캔버스를 통해 비로소 하나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조은혜

    <켄싱턴의 장마>, 52초, 영상, 2020

     

    켄싱턴의 장마는 두 달간 머물던 켄싱턴 집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던 풍경과 겨울 장마를 담고 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된 자동차, 집과 나무의 변하지 않는 이미지가 창문의 틀을 통해 그림으로 인식될 때 무서웠던 비바람, 천둥과 번개는 그저 조형적 효과에 불과했다. ‘의식에 따른 인식의 차이’를 드로잉 과정을 미속 촬영하여 시간의 흐름으로 담아냈다.

    황수빈

    <나>, 50초, 영상/블렌더,애프터이펙트, 2020

     

    빽빽이 둘러진 각진 바위들은 낯선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심한 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텔레비전 한 대는 나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차올랐다 가라앉는 물은 기분이 금방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변덕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파랑, 보라 조명을 이용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작년에는 나에게 이런 부정적인 모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종종 우울했고, 종종 괴로웠다.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작품으로 나타내며 부정적인 모습도 나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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